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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은행총재 김용박사의 보스턴 노스이스턴 대학교 졸업 축사

by 루시경 2023.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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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박사의 졸업 축사 서문입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아침입니다. 고등학교 시절 농구를 할 때부터 항상 이 가든에서 경기를 하고 싶었는데 드디어 여기에 서게 됐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하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대학을 떠나 새로운 인생에 막 발을 내딛으려는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것은 정말 영광입니다. 아직 각본이 쓰여지지 않은 새인생 바로 앞에 있습니다. 제가 학생이었을 때 전 새로운 출발인 졸업식을 참 좋아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여기 계신 많은 분들은 미래가 어떻게 될지 걱정하고 계실겁니다. 그리고 전 여러분께 이 말을 해드리고 싶습니다.여러분의 미래는 불확실할 뿐만 아니라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불확실 할 가능성이 높다' 라고 말이죠. 그런데 다행인게 뭔지 아세요? 최근 '사이언스 저널'에 실린 심리학자 그룹의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매우 서툴다'고 합니다. 이 연구는 한 예를 보여주는데요. 전형적인 20세 여성이 향후 10년 동안의 자신의 삶의 변화에 대해 예측하는 것은 전형적인 30세 여성이 20대때보다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기억해내는 만큼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20대는 향후 10년간 자신이 얼마나 변화할지 거의 알지 못하며 이러한 현상이 응답자들의 60대까지 꾸준히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이 연구 결과는 근본적으로 제 삶과 같습니다. 제가 태어나기 전 제 부모님이 겪으신 어려움들을 고려해보면 제가 태어날 것이라는 것을 결코 예측할 수 없었을 겁니다. 저희 아버지는 북한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습니다. 17살에 국경을 넘어 한국으로 탈출하셨습니다. 그의 부모님, 형제, 자매를 비롯해 모든 가족들을 두고 떠나서야 하셨죠. 그가 평생 알아왔던 그 모든 것을요. 그는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든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입학해 치과의사가 되셨습니다. 아버지께선 돈이 얼마나 없었는지 제게 애개해주시곤 하셨는데요. 길거리에 있는 불법 국수 노점에서 겨우 점심을 사먹을 정도의 돈만 있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아버지께서 밀수품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노점 바로 옆에서 경찰이 노점상과 모든 손님들을 쫒아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도망가면서도 계속 라면을 먹었다고 합니다. 왜냐면 라면을 살 돈이 그 돈 말고는 더 이상은 없었기 때문이었죠. 저희 어머니는 상하이 근처에 있는 한국인 이주자들의 작은 공동체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어느 날을 어머니는 절대 잊지 못하시는데요. 할머니가 빨래를 널러 나가시는 걸 본 이후 다시는 할머니를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북한 군인들에게 납치되었거나 살해되셨을 거라고 추측하셨죠. 전쟁이 닥쳤을때 제 어머니는 15살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난민이 되셨고 남동생을 등에 업고 말 그대로 320km를 걸으셨습니다. 전쟁에서 도망치기 위해서요. 다행히도 어머니는 텐트 아래에서 학업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한국의 남쪽 도시 마산에서요. 어머니는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미국 여성 협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아 내슈널 테네시에 있는 스카릿 대학교에 신입생으로 입학하셨습니다.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오신 제 부모님들은 뉴욕의 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만났습니다. 당시 미국에 살고 있던 수백 명의 한국 학생들이 모인 곳이었죠. 부모님은 서로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하셨습니다. 제 형이 뉴욕에서 태어나게 됩니다. 그리고 부모님은 한국으로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태어났습니다. 제가 5살때 가족들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아이오와주 무스카틴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치과 개업을 하셨고, 어머니는 아이오와 대학에서 철학 박사과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늘 이야기 하는 것처럼 우리는 아이오와주의 작은 마을에 거주하는 전형적인 한인 교포 가족이었죠. 우리는 그 삶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나라의 중심지에서 말이죠. 고등하교 졸업 후 전 브라운 대학교애 입학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던 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데요. 그날 아버지게서 저를 데리러 공항으로 오셨습니다. 차를 타고 집으로 오는 동안 아버지는 무심하게 저에게 물으셨죠. "무슨 전공을 공부하고 싶니?" 저는 철학과 정치학이 정말 흥미롭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고 정치에 진출할 생각이었죠. 그러자 아버지는 차 깜빡이를 켜고 차를 천천히 길가에 세웠습니다. 차 시동을 끄더니 저를 돌아보며 말하셨습니다. "아들, 의학 레지던트 과정을 다 마치고 나면 네가 원하는 것 다 해라." 지금 여기 청중 속에 아시아인 부모님들이 몇 분 보이시는데 고개를 그덕이시며 "뭐가 웃기다는거야?"라는 표정이시네요. 하지만 보다시피 제 아버지는 미래의 불확실서에 대해 다 알고 계셨던 겁니다. 인생의 결말을 확신하는게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계셨고 그리고 걱정하셨죠. 자신의 성공때문에 자식들이 깊게 이해하는 기회를 잃게될까봐 걱정하신겁니다. 경찰에게 쫓기면서도 라면을 먹어야만 하는 그런 삶의 의미를요. 아버지는 제가 기술을 가지시길 원하셨습니다. 제가 즐거운 일만 하는 것에 맞서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는 힘든 현실과 생사가 달린 상황의 환자를 돌보는 힘든 상황에 맞서기를 원하셨습니다. 저는 정말 아버지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김용 총장
김용 총장님

불확실성에 맞서 특별한 삶을 떠날 준비

지금까지 전 인생의 불확실성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이미 알고 계셨을 겁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정말 알고 계셨으면 하는 것은요. 여러분은 풍부한 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볼확실성에 맞서 특별한 삶으로 떠날 수 있는 , 심지어 꿈에도 생각지 못한 것이 여러분에게 있습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심리학자인데요.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는 인간의 자질을 연구한 학자죠.  이 매혹적인 분야에서 연구원들은 성공과 가장 일관되게 연관되는 두 가지 특성을 발견했습니다. 지성과 의지력입니다. '의지력'이라는 바이마이스터의 책을 보면 지성을 영구적으로 높이려는 노력을 실패해 왔자만 의지력은 실제로 향상 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의지력은 근육관도 같다고 합니다. 연습으로 의지력은 높일 수 있기도 하지만 또한 적극적으로 발휘하지 않으면 그 능력은 퇴화한다는 것입니다. 복근 운동을 그만 뒀을 때의 근육처럼요. 다른 각도에서 보면, 한 연구자 그룹은 재능보다 연습이 기술이나 능력을 숙달하는데 결정적이라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하지만, 불확실성과 의지력 외에 오늘 여러분들이 기억하셨으면 하는게 또 하나 있습니다. 전 여러분들이 어떻게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계속적으로 말이죠. 아이오와로 돌아가서, 저희 어머니는 마틴 루터 킹의 작품을 읽어주곤 하셨습니다. 그는 현재의 긴박함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시간은 중립적입니다. 

시간은 파괴적으로도 건설적으로도 쓰일 수 있다

시간은 파괴적으로 쓰일 수도 있고 건설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전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의지력으로 마틴 루터 킹의 말한 긴박함을 오늘날 제 일에 적용하려고 놀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의학 학위뿐만 아니라 인류학 박사 학위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10개국의 동료들과 함께 '파트너스 인 헬스' 를 설립할 수 있게 해 줄 줄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학문적 행정 경험으로 다트머스 대학의 총장이 되는 엄청난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바마 대통령이 저에게 세계은행그룹 총재 후보가 되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저는 항상 떨리는 마음으로 예상치 못했던 이런 기회들을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위해 사용한 시간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업적이 될 것입니다. 오늘의 연설을 마무리하며 여러분들께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의식적으로 대담한 목표를 세우고 의지력을 키워 시간을 잘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4년간 노력을 통해 여러분은 특별한 것을 얻었습니다. 비판적 사고의 기초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현실 세계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용적인 기술들을 익히세요. 이 기술들은 여러분들께 힘과 책임을 줄 수 있는 특별한 자격을 부여핼줄 겁니다. 여러분은 서울 거리에 서있는 아버지처럼, 불확실한 세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마세요.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용하세요. '불확실성'은 아무것도 미리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지의 힘, 지성의 힘, 그리고 열정의 힘으로 말이죠. 불확실성은 자유입니다' 그 자유를 움켜쥐고 달려가세요. 그리고 달리면서 국수 먹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김용박사님의 이력입니다

1959년 12월 8일 서울에서 태어난 그는 의사이자 인류학자입니다. 5살때 일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 한국에서는 비교적 인지도가 덜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50인에 선정되기도 한 유명 인물입니다. 그는 원래 철학자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정치학과 철학에 관심이 많았지만, 치과의사 출신인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의사가 되기로 결심, 브라운 대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하버드 대학교 메디컬 스쿨(의대)에 진학, 의학박사와 인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졸업 후 하버드 메티컬 스쿨의 각종 보직을 역임하며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마침내 메디컬 스쿨 교수 자리에까지 올랐습니다. 특히 하버드 메디컬 스쿨 국제보건학과장 등을 역임하며 중남미의 열악한 결핵 의료 퇴치 운동을 벌였고, 이러한 활동 경력에 힘입어 WHO 에이즈 국장직을 맡기도 했으며 2009년부터 2012년 6월까지 미국 다트머스 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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